주먹구구식 탁구팀 운영 ‘인삼공사 사태’의 경고
문화일보 이동윤 선임기자의 스포츠 인사이드[2012년 01월 11일(水)]
주먹구구식 탁구팀 운영 ‘인삼공사 사태’의 경고
탁구계에 새해부터 ‘태풍’이 몰아쳤습니다. 현존하는 남자 탁구팀 중 가장 역사가 오랜 인삼공사팀이 태풍의 진원지입니다.
인삼공사 탁구단의 뿌리는 1963년 창단한 전매청입니다. 1966년 방콕아시안게임 남자단식 결승에서 이 팀 소속이었던 김충용(에쓰오일 총감독)이 당시 세계 최강이던 일본의 하세가와를 꺾고 우승했는데 그 금메달 덕에 태국에 금 1개 차로 뒤질 뻔했던 한국은 종합 2위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전매청보다 3년 먼저 농협이 남자 탁구팀을 창단했지만 몇 년 지속되지 못하고 해체된 바 있어 인삼공사 탁구팀은 그 역사가 반세기에 이르는 국내 최고의 팀이자 오늘의 한국 탁구를 일군 비옥한 토양이었습니다.
인삼공사팀은 새해 벽두 서상길 감독, 이상준 코치, 오상은 플레잉코치와 재계약을 하지 않기로 결정,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표면적인 이유는 지난해 말 최강전에서 오상은이 0-11이라는 치욕적인 스코어로 패한 것에 대한 문책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어 열린 종합선수권에서 4관왕을 차지한 바 있어 성적 운운은 그야말로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합니다.
인사 태풍의 실제 원인은 ‘소통 부재’입니다. 오상은의 충격적 패배는 최강전이 방송 중계 문제로 갑자기 일정이 잡혀 계약되어 있던 폴란드 리그와 겹치는 바람에 나가지 못하게 되자 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생긴 해프닝입니다. 오상은은 폴란드에서 인기가 높아 그 클럽에서는 오상은이 연말 대회에 출전하지 않을 경우 흥행에 큰 지장이 있다면서 지급을 미루고 있던 연간 개런티를 모두 주지 않겠다고 협박(?)했다고 합니다. 1억원이 넘는 돈도 돈이지만 당장 내년 시즌 재계약이 걱정된 오상은은 정신없이 경기를 치르다 2세트에서 치욕의 패배를 당하게 됩니다.
오상은은 “회사 측에서 계약 내용을 알고 있다”고 했지만 단장과 주무가 모두 바뀐 구단 측은 금시초문이었다고 합니다. 전임 단장과 신임 단장의 인수인계, 또는 감독과 단장과의 소통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실업 탁구팀은 지금까지 회사 측에서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서인지 감독이 사실상 팀 운영을 전담해 왔습니다. 프로팀의 입장에서 보자면 ‘무슨 팀 운영을 이렇게 해’ 할 정도로 말이죠. 인삼공사는 남자 프로농구, 여자 프로배구팀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 프로팀과 탁구팀 모두의 단장을 맡고 있는 입장에서는 탁구팀 운영이 괘씸할 정도였을 것입니다.
탁구인들은 이제 탁구도 프로로 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프로화로 가기 위해서는 팀을 운영하는 자세부터 바뀌어야 합니다. 실업 탁구팀 감독들은 이번 인삼공사 사태를 일종의 경종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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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 관련기사>
[2011년 12월 14일(水)]탁구는 중국이 최강입니다. 하지만 중국 탁구도 1990년대 위기를 맞았습니다. 경제 발전과 함께 많은 선수들이 해외 진출을 희망했고 그 결과 ‘부메랑 효과’에 휘청거렸습니다. 1993년 예테보리 세계탁구선수권에서 현정화가 여자 단식 금메달을 딴 것도 이런 부메랑 효과의 덕을 좀 본 겁니다. 현정화는 현역시절 중국의 ‘핑퐁 마녀’ 덩야핑을 한 번도 이겨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대회 준결승에서 덩야핑이 중국에서 싱가포르로 이민 간 진준홍에게 패하는 바람에 현정화가 ‘어부지리’했습니다. 중국은 자국 내에 슈퍼리그라는 프로리그를 만들어 유망주들의 해외 유출을 막았습니다. 억대 연봉과 고액의 상금 덕분에 이제 중국선수들은 이제 더 이상 해외로 빠져나가지 않습니다.
[2011년 9월 21일(水)]
대한탁구협회 전무이사를 맡아 지도자에서 스포츠 행정가로 외연을 넓히고 있는 현정화(42)씨는 1993년 세계선수권에서 여자 단식 챔피언에 올랐습니다. 세계선수권은 올림픽과 달리 국가별 출전 인원이 훨씬 많기 때문에 단식에서 우승하려면 보통 16강전에서부터는 세계 최강인 중국선수들을 연속으로 이겨야 가능합니다. 그때문에 남녀 통틀어 세계선수권 단식을 제패한 한국 선수는 아직 현정화밖에 없습니다.
당시 세계랭킹 1위는 ‘마녀’라는 별명의 덩야핑(38·중국)이었습니다. 현정화는 현역시절 한 번도 덩야핑을 이겨보지 못했죠. 그런데 어떻게 세계선수권 단식 챔피언이 됐냐고요? 덩야핑이 싱가포르의 진준홍이라는 선수에게 져 탈락했기 때문입니다. 중국에서 귀화한 진준홍이 ‘마당을 쓸어 준 덕분’에 현정화가 정상에 입성하게 된 것이죠. 현정화가 이렇게 우승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세계챔피언은 하늘이 낸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또 ‘중국탁구가 부메랑 효과에 당하다’라는 상자 기사를 송고한 것도 기억납니다.
중국탁구는 이후 A급 선수의 해외 이주를 막기 위해 여러 가지 장치를 마련했는데 우승상금이 수억원 대인 자국 프로리그인 슈퍼리그를 창설한 것도 그중 하나입니다. 요즘 중국의 대표급 탁구선수들은 벤츠, BMW 중에서도 큰 놈으로 타고 다닐 정도로 주머니 사정이 좋아져 굳이 외국으로 떠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2011년 06월 08일(水)]
요즘은 예전보다 못하지만 스웨덴은 유럽탁구의 강국입니다. 아펠그렌, 발트너, 페르손 등 ‘5총사’가 건재했던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반에는 중국을 꺾고 세계 정상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펜홀드로 세계를 제패했던 중국 남자탁구가 펜홀드를 버리고 셰이크핸드 전형을 택한 것도 1989년 도르트문트 세계선수권에서 스웨덴에 완패한 것이 계기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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